우리문화~판소리

베벵이 굿 / 이은관 옹.

바람처럼 어디로 갈거나 2008. 7. 8. 02:32







배뱅이굿 :

배우 한 사람이 등장하여 여러 사람의 역을 도맡아서 창(唱)을 불러 새신초혼(賽神招魂)하는 서도(潟) 지방의 연극적인 굿놀이.
조선시대 영조 ·정조 이래 구전된 것을 한말에 평남 용강의 김관준(金官俊)이 개작하여 아들 종조(宗朝)가 계승하였다. 김종조의 동료인 최순경(崔順慶) ·이인수(李仁洙) 등이 부르면서부터 널리 전파되었다. 구성은 황해도 소리가 중심이 되나, 경기 ·강원 ·함경의 민요 · 잡가 등을 사이사이에 넣어가며 남도 판소리의 ‘아니리’를 본받아 창자(唱者) 한 사람이 주고받고 설명한다. 오늘날 부르는 것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훨씬 이후의 것으로 추측되는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숙종 때에 경상도 태백산 아래 9대째 내려오는 무당 최씨라는 부자가 살았다. 어느 해 나라에서 귀천을 가리지 않고 과거를 보였으므로, 그도 이에 응시하여 급제하고 경상 감사 벼슬을 받았다. 그러나 부임 얼마 후 무당임이 탄로나 쫓겨나고, 황해도로 가서 최정승으로 행세하며 그곳에 사는 김, 이 두 정승과 형제의 의를 맺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모두 혈육이 없었다. 어느 날 세 사람은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하여 각각 딸 하나씩을 낳았는데, 최정승은 딸의 이름을 ‘백의 백갑절’이라는 뜻으로 ‘배뱅[百百]이’라고 지었다.

이 셋은 어느덧 자라서 처녀가 되었다. 하루는 금강산 어느 절에서 나온 탁발승이 최정승 집에 왔는데, 배뱅이는 그 중에게 첫눈에 반하여 그를 불러들여서 벽장에 숨겨두고 함께 지냈다. 중은 머리를 기른 뒤 오겠다고 기약하고 떠난 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중을 기다리다 지친 배뱅이는 끝내 상사병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최정승 내외는 딸 배뱅이의 넋이나마 불러보고 싶어 이를 이루어주는 사람에게는 재산의 절반을 나눠주겠다고 하였다. 이에 팔도의 이름난 무당들이 몰려들어 굿을 하였으나, 아무도 넋을 불러오지 못하였다. 그 때 지나가던 평양의 젊은 건달 부랑자가 무당 행세를 하여 넋을 불러들여 주었으므로, 최정승은 그에게 약속을 지켜 재산의 절반을 주었다는 것이다.

극의 구성은 산천기도 ·현몽 ·배뱅이의 출생 ·성장 ·연애 ·배뱅이의 죽음 ·장사 ·무당의 굿 ·주막집 ·배뱅이의 마지막 굿날 ·귀로 등의 순서로 되어 있다.


이은관:

중요 무형 문화재 제29호(1984년 지정)로 보유자는 황확동에 거주하는 이은관(李殷官)이다.
서도(潟)소리는 황해도. 평안도지방에 전승되는 민요, 잡가 등 관서 향토민요를 가리킨다.
서도소리는 예로부터 대륙과 인접한 거친 풍토에서 북방 이민족과 겨루며 굳세게 살아온 관서지방민들의 생활속으로 면면히 이어온 소리이다.
조선말기에 평양 소리꾼 허덕선(許德善)이 서도소리 잘하기로 장안에까지 이름이 있었고 기밀경을 지어 잘 불렀다 한다.
그뒤 평안도 용강(龍岡)소리꾼 김관준(金寬俊)의 뒤를 이어 김종조(金宗朝), 최순경(崔順慶), 이인수(李仁洙), 김칠성(金七星), 김주호(金周鎬), 김밀화주(金密花珠)와 같은 명창이 나서 조선 말기와 일제 때에 서도소리가 크게 성창(盛昌)되었다.
김밀화주의 소리는 장학선(張鶴仙)이 이어받아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고 장학선이 중요 무형문화재 서도소리 보유자로 인정받고 그가 타계한 뒤 김정연(金正淵), 오복녀(吳福女), 이은관(李殷官)이 인정되었다.
서도소리는 짧은 장절형식(章節形式)으로 된 민요와 좀 긴 통절형식(通節形式)으로 된 잡가와 한시를 읊은 시창(詩唱)으로 가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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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관 - 배뱅이 굿   2008.04.07

·배뱅이의 죽음 ·장사 ·무당의 굿 ·주막집 ·배뱅이의 마지막 굿날 ·귀로 등의 순서로 되어 있다. 이은관: 중요 무형 문화재 제29호(1984년 지정)로 보유자는 황확동에 거주하는 이은관(李殷官)이다. 서도(潟)소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