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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7 3 1 부대 마루타 실험장면입니다

바람처럼 어디로 갈거나 2007. 2. 13. 20:24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세균 병기의 위력을 확신한 일본군 이시이 군의 중장이 관동군의 만주 지배를 발판으로 세균전 연구를 자행한 곳. 세균 병기를 개발하기 위해 페스트, 탄저, 콜레라와 같은 치사율도 높고 전염성동 높은 강한 세균을 연구 대상으로 역사에 대항한 항일 투사들과 많은 포로들에게 자행. 9년 (36~45년)간 약
3천명 이상의 마루타가 독가스, 동사실험, 세균 실험 대상으로 사라지며 실험 보고서에 기록 되었다.
 
 
  마루타란 1936년에서 1945년 여름까지 일본 관동군 만주 제 731부대
에 의해 희생된 한국인, 중국인, 만주인, 몽고인, 러시아인등 전쟁포로
및 그 외 구속된 자로 약 3천여면이상의 마루타 즉 "통나무"란 뜻으로
생체 실험 대상자를 말한다. 마루타에게는 특별한 것들이 있다.

_첫째, 마루타는 인간의 이름이 필요치 않다. 단지, 세자리의 번호로
구분되는 생체실험의 재료를 의미한다.

_둘째, 마루타에게는 최고의 식사가 제공된다. 매끼마다 영양만점의
음식에 디저트, 비타민제까지 곁들여 졌다.

_셋째, 마루타는 소약한 체력을 하루라도 빨리 회복하여 실험재료가
되기 위해 건강한 육체를 찾아야 한다.

방역 연구실 대원들의 배양기 제작중인 현장 방역 연구실 대원들의 작업 현장
1935년 육군 군의학교에 군관들의 기념 사진 1931년 육군 군의 학교에 설립된 방역 연구실
1928년 6월 3일 일본 관동군의 장작림 피살사건 현장 1927년 6워 27일 일본 수상과 내각의 동방회의 모습(이 회의에서 중국 침략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중국 수화지구 서역 전염  조선 안내도 제731부대 남문 수위소
제731부대 설립 초기의 군수품 보관소 제731부대 전경 사진
하얼빈 평방 제731부대 지역 경찰서 옛터

역구에서 병리검사 진행

 

 

제731부대 본부 건물 북경 제1855부대(제731부대 지부)유적
제731부대 야외 독가스 연습 진행자 단체 사진 부대원 가족 사진

방독을 연구한 리엔반 건물 잔해 황서 사육실 건물
지하 갱의실 도자기 폭탄의 도자기 제조 공장 건물

제731부대 위생병들의 야외 세균전 훈련 모습 세균전 연습 훈련

다나까반 건물 내부 모습 제731부대 전용 철도
마루타를 잡아들였던 하얼빈 헌병대 건물 부근에 제731부대가 있었던 하얼빈 팡파오 기차역

중국 요복지역에서 서역으로 죽은 환자 사방루로 통하는 지상 중심 복도 잔해
마루타로 희생된 심덕용(남자) 마루타로 희생된 기록으로 남아 있는 마루타 조충박

 

중국 하얼빈 핑파오 제731부대 자리에 전시4관이 있다. 그 전시회 팻말 발전기가 있는 건물 잔해 사진이 있는 전시회 안의 사진
전시 책자에 나온 안내 내용
마루타 해부 모습 전시회에 마네킹으로 만들어 놓은 마루타 해부 모습
전시회에 진열되어 있는 수술 도구 당시에 사용하던 수술 기구가 전시되어 있다
당시 실제 사용되었던 해부 기구
전시된 마루타 실험 장면
당시 사용되었던 기구
전시된 제731부대 전경 모형도 전시된 각종 기구
희생된 마루타 해골 특별 감옥에 갇혀 있는 여자 마루타 모형
남아 있는 유품들 전시실의 벽에 전시되어 있는 현장 사진
세균 실험 때 사용했던 옷과 방독면 대원이 방독면을 쓰고 있는 모습
동상 실험 장면 마루타 동상 실험을 하던 장면
얼어있는 손을 막대기로 때려 개뜨리는 동상 실험 장면 야외 실험장에서 실험을 당하는 마루타 사진

 

잔해가 남아있는 제731부대 부속 건물들

남아있는 것을 발굴한 마루타 유골 중국 수화지구 서역 전염 노선 안내도

제731부대에서 사육한 동물표 제731부대가 세균을 배양하려고 길렀던 각종 곤충
제731부대가 챙긴 황서 문서 목록 전후에 특별반원이 직접 그렸다고 하는 특설감옥도
제731부대에서 사용했던 인체 해부학 책자 령파 세균전 노선도

중국의 숙포민보에 게재된 일본군 세균전 사실 기록

 



 

일본인에게 폭행을 당하고 죽어있는 여인.

내장이 터져 나왔다.

눈을 뜬 채로 죽어있다.

 



일본군들이 철수하면서 폭파시킨 731부대의 해부실 내부 잔해.

일본군은 증거 인멸을 위해 실험 대상자들을 살해하고 불을 질렀다.

 

 

 

 

731부대의 수많은 생체 실험 데이터들은 전쟁 종결 후 미국이 입수했다.

731부대에서 활동했던 의사들에게는 완벽한 자유가 주어졌다.

731부대의 수장 이시이 박사는 후에 도쿄대학 학장까지 역임한다.


미국은 전쟁 종결 후, 외국의 과학과 과학자들을 병적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731 부대가 했던 실험 중 일부는 미국에서 지속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흐를수 밖에 없는 력사지만 흘러가버렸다고 잊지 말아야하는 일들이 있다. 일본의 '731부대'의 설립은

 

세인의 치를 떨게 하는 잔인무도한 행위였으며 그들의 공포스런 실험은 이 세상을 환멸시키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악행이였다. 인성을 잃은 이들에 의해 '마루다'가 되여 생명을 잃은 이들을 생각하면 세상사람

 

들은 분노를 금치못한다. 더욱이 우리들의 가슴을 찢는 사실은 '마루다'에는 우리민족의 항일렬사와 무고한 사람 7명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1949년 12월 26일 구쏘련 하바로프스크에서 열린 극동군사재판의 공개재판에서 일본 731부대는 일본침략군의 세균공장이였으며 세균실험을 거쳐 중국인, 쏘련인, 몽골인, 조선인 등 3,000여명을 살해한 사실이 적발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할빈 평방에 자리잡은 일본731부대는 악마의 마굴이였다. 이 마굴로 조선인들도 여러가지 형식으로 끌려가 세균실험으로 쓰이는 '마루다'로서 생체실험을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있다. '특별이송' 된 조선인 731부대의 특수실험재료 ―'마루다'는 주로 일본현병대로부터 공급됐다. 일본특무기관 할빈주재 일본총령사관 그리고 위만주국의 군대 경찰 헌병 특무기관들이 서로 배합되여 끊임없이 실험재료인 '마루다'를 731부대에 '특별이송'했다. 관동군사령관은 친히 '특별이송처리'명령을 비밀리에 내렸다. 그것인즉 각지방의 헌병대와 위만주국경찰서에서는 체포된 자가 주요한 범인이라고 인정되였을 때는 법정에 넘겨 재판을 받을것없이 직접 헌병대를 거쳐 731부대에 특별이송하여 세균실험을 거친후 죽여버리라는것이였다. 여기서 조선사람을 특별이송한 등기표 하나를 보기로 하자. 시간: 1939년 6월. 명령자: 할빈시 신시가헌병분대장 소좌 아카기 모리미. 내용: 할빈 향방부근에서 중공아성현위 중조(中朝) 공작자 25명이상이 집회하고있음을 정찰하고 몽땅 체포했음. 결과:비행장에서 이시이부대가 독약을 몸에 주사하여 사망」 우리는 이 등기표에서 중국공산당 아성현위 위원으로 공작하던 조선인 공산당원들이 할빈 향방부근에서 회의를 하다가 체포되여 일본헌병대로부터 731부대에 특별이송되여 731부대의 비행장에서 독물실험재료로 살해되였음을 알 수 있다. 주사실험을 담당했던 원 731부대 하급사무원 고바야시의 말에 의하면 사람의 정맥에 5cc의 공기를 주입하면 사람이 죽고 사람의 몸에 말피 500ml를 주사하면 사람이 죽고 사람의 몸에 청산화학물 독약 20cc를 주사하면 주사기를 뽑아 1초도 못되여 사람이 죽는다고 한다. '일군731부대죄악사'편집위원회에서 전국 각지에 널려있는 일본헌병대와 일본특무기관의 력사서류를 본 결과 134건의 '특별이송'건을 발견했는데 731부대에 이송된 '마루다'는 모두 1,203명이였다. 그중 중국인 1,173명, 러시아인 16명, 몽골인 7명, 조선인이 7명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57명의 피해자 성명을 찾았는데 조선인으로는 심득룡(沈得龙), 리청천(李清泉) , 리기수(李基洙), 한성진(韩成镇), 김성서(金圣瑞), 고창률(高昌律)이였다. 심득룡은 대련에서 사진관을 경영하면서 반일 정보활동을 하던차 1943년 4월 중순 대련 흑석초에서 체포되여 731부대에 이송되였다. 리청천은 1944년 7월에 할라얼(海拉尔)에서 반일활동을 하던중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여 731부대에 이송되였다. '특설감옥'에 투옥된 조선인 731부대에서 세균과 세균무기를 실험하는 실험재료는 산 사람이다. 때문에 731부대는 이런 실험재료를 가두어놓는 '특설감옥'을 지었다. 이 특설감옥은 731부대가 실험재료인 산 사람을 저장하는 창고인셈이다. 네모꼴나는 벽돌집 울안에 세운 서쪽에 있는 집은 7호감옥이고 동쪽에 있는 집은 8호감옥이다. 모두 세멘트 콩크리트로 지은 2층집이고 지하실까지 있다. 이 특설감옥에는 중국인, 러시아인, 몽골인과 조선인들을 가둬놓고있다. 그 당시 731부대 제4부에서 실험조수를 담당하고 있었던 우에다미다로는 목격자의 한사람이다. 1942년 4월 고오다다케시치조장의 조수로 있던 우에다미다로가 세균실험을 받은 중국사람의 병세변화를 관측하러 7호감옥으로 갔을 때 고오다조장은 함부로 일본말을 하지 말라고 일깨워주면서 "이 감옥안에는 조선인이 투옥되여 있다. 그들은 모두 일본말을 안다"고 신비한 어조로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특설감옥 7호감옥에 조선인 '마루다'가 투옥되여 있었다는것을 증명해주고있다. '할빈보호원'의 조선사람 731부대에 실험재료를 특별수송하는 곳은 헌병대외에 또 '할빈보호원'이 있다. 이 '할빈보호원'은 일본관동군 정보부에서 '월경하여 만주에 잠입한 자'를 심사하는 특무기관이다. 여기는 또한 소련군, 몽골군 포로병도 가둬놓는 수용소이자 감옥이였다. '할빈보호원'은 1941년 할빈시 향방의 교외 즉 지금의 흑룡강성기상연구소 자리에다 건립하였다. 거기에 배치된 자들은 모두 일본헌병이였다. 이 할빈보호원에도 조선인이 갇혀있었다. 일본 니시하라 사치스케가 쓴 '할빈특무기관―일본관동군 정보부 간사' 제196페지에는 "소련군대에서 온 조선인 포로에 대해서는 '지또시', '지또가', '지또헤'라는 부호를 썼다"라고 증명하였다. 이는 즉 포로된 조선사람들을 등기할 때 성명을 쓰지 않고 조선인 군관은 '지또시', 군사는 '지또가', 병사는 '지또헤'로 세 가지 부호를 썼다는 말이고 각가지 부호아래에 제1호, 제2호로 번호를 달았다고 한다. 이 보호원 부주임이였으며 정보조사과 과장으로 있었던 아사기 시아키후는 소련 빈해 군사법정에서 '할빈보호원'에 갇혔던 사람들은 "모두 731부대에 발송하여 소멸했다"고 공인했다. 독가스실험에 조선인 '마루다' 사용 독가스실험장에서 일했던 원 731부대 대원의 회상에 의하면 조립식 바퀴달린 밀차우에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에다 '마루다'를 동여맨다. 밀차는 궤도우에서 이동할수 있어 직접 실험실로 밀어넣는다. 실험실이란 사방이 투명한 유리창으로 되여 밖에서 들여다 볼수 있는 작은 방이다. 실험실문을 열고 산 사람을 동여맨 밀차를 밀어넣고 문을 닫으면 실험이 시작된다. 매번 실험할 때마다 새, 쥐, 개, 닭, 비둘기같은것을 사람과 같이 집어넣는다. 독가스의 종류와 농도에 따라 때로는 '마루다'에게 방독면구를 씌우고 군복을 입혀 실험실에 밀어넣으며 때로는 '마루다' 옷을 벗기고 피부가 로출되게 하여 실험실에 밀어넣는다. 일본작가 모리무라세이찌가 쓴 '악마의 포식'에서 원 731부대 대원이 증명하는데 의하면 '마루다'를 바퀴달린 밀차의 기둥에 동여맬 때면 뭘 하려는것을 알아차리고 어떤 사람은 버둥거리면서 욕지거리를 하는데 이때면 경비임무를 맡은 특별반원들이 몽둥이로 '마루다'를 한바탕 패고는 실험실로 밀어넣었다. 그때 제일 많이 몸부림치고 아우성을 치며 반항하는것이 조선사람 '마루다'들이였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아 731부대가 독가스실험에 조선인들을 생체실험재료로 사용하여 죽였다는것이 증명된다. 731부대 대원의 말에 의하면 '마루다'는 기둥에 묶인채로 구멍을 통해 나오는 독가스를 마시면서 맹수와 같이 고함을 치며 발광적으로 몸부림치다가 입으로 흰거품을 내뿜으며 분노의 두 눈을 부릅뜬채 사지를 뻗고 목덜미가 툭 꺾이면서 숨이 넘어간다. 마루다의 생명강도는 대체로 비둘기와 비슷하여 비둘기가 죽을 때면 마루다도 숨이 넘어간다고 하였다. '협화방첩반'에서 조선인 살해 할빈헌병대에서는 평방특별군사구역에 대한 통제를 가강하기 위하여 731부대에 헌병실을 두었다. 그리고 소위 간첩을 방치한다는 명의로 731부대 주변의 각 주민부락에 '협화방첩반'을 조직하여 무고한 인민군중을 붙잡아 살해했다. 협화방첩반 반장으로 있었던 후옥서의 회억에 의하면 1943년 4월의 어느날 오후 로오툰의 북쪽 갈림길에서 근무중이던 한 협화방첩반 반장이 지나가던 조선인이 거주증명서가 없기에 그를 로무반구류소에 가둬넣었다. 그날 저녁 협화방첩반 총반장인 라초정과 헌병실의 일본통역 하루니찌는 그에 대하여 모진 매질을 하여 그 조선인을 때려죽였다고 한다. 민간에 전염병 파급 731부대는 세균무기를 제조하는 한편 전염성이 강한 병균을 산포하여 평방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할빈전염병구역'을 조성하였다. 1944년 8월 평방부근의 정황기 4툰 부근에 장질부사 전염병이 발생했다. 해방후인 1946년 9월에는 평방부근의 이발원툰, 이도구툰, 동정자툰에서도 장질부사가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지금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에서 사업하다가 퇴직한 김종운씨는 731부대에서 조작한 세균의 직접적인 피해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증언하였다. "해방전에 우리 집은 평방에서 40리 떨어진 쌍성현 배나무골에서 살았다. 내가 11살 나던 해인 1944년 가을 731부대에서 제조한 세균의 파급으로 온 마을에 장질부사가 돌았다. 우리 집에서는 나의 녀동생, 외사촌동생, 외할아버지와 일군 4명이 죽었다. 나도 장질부사에 걸렸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죽지 않고 살아났다. 그때 배나무골에는 조선사람이 5개 툰에 100여호 살았는데 집집이 한사람씩은 죽어나간 셈이다." 731세균부대가 조선인에게 생체세균실험을 진행한것은 력사사실이다. 우리는 일제가 감행한 하늘에 사무치는 죄행을 명기하여야 한다. 력사교훈을 잊지 말고 전쟁을 반대하고 인류의 진보와 행복 그리고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여야 한다.